계엄 사태 이후 한국 사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국은 요지경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관저에서 체포되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11시,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이후 한국 사회는 통째로 ‘유구무언’에 빠졌다.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도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는 소리다. 공포와 황당함으로 버무려진 불쾌가 한 해의 마지막을 까맣게 칠했다.
2025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은 관저에서 ‘버티기 전략’에 나섰다. 집권여당 국민의힘은 이제야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제1야당 민주당은 연일 강경태세다. 양당 지지율은 계엄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광화문과 한남동 곳곳에서 ‘대통령 수호’와 ‘즉각 퇴진’이 찬 공기를 뚫고 데시벨을 다퉜다.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관저에서 체포되었다.
정치인가 전쟁인가
대통령 ‘한 명’이 쏘아 올린 ‘자살골’에 나라 전체가 흔들렸다. 해가 바뀐 지금도 한국 사회는 큰 모양으로 휘청거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는 반대세력을 향한 ‘전쟁’선포였다. 헌법이 정한 틀 내에서 의회를 견제하지 않고, 행정부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려 무력화 하겠다는 엄포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대세력에게 자주 ‘파시스트’로 불렸는데 만족할 만한 설명을 준 셈이다. 의회 무력화는 파시즘의 가장 강력한 징표다.
12월 4일 새벽, 국회의사당 진입을 시도하는 무장군인.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의 계엄해제안 의결로 2시간 만에 끝났다.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무장군인들의 이미지로 여느 때보다 선명했던 내부‘전쟁’도 끝났다. 적어도 눈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대통령 ‘한 명’이 쏘아 올린 ‘자살골’에 나라 전체가 흔들렸다. 해가 바뀐 지금도 한국 사회는 큰 모양으로 휘청거린다.
단 ‘한 명’의 자살골로 휘청거리는 나라
현행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권한은 ‘박정희 헌법’인 3공화국 헌법의 대통령 권한과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1987년 헌법 개정에서 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하고 ‘도로 3공화국’으로 회귀한 것은 큰 실책이다.
민주당이 정치 규범을 무시하고 법사위 독차지나 줄줄이 탄핵안으로 헌법이 정한 틀 내에서 기름을 부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헌법적 틀 자체를 통째로 활활 불태웠다.
현행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권한은 ‘박정희 헌법’인 3공화국 헌법의 대통령 권한과 거의 비슷하다. 이후 개정된 4공화국 헌법, 즉 유신헌법은 3공화국 헌법에 국회 해산권, 긴급조치권, 대통령 연임 제한 폐지를 추가하는 등 대통령의 독재적 권한을 대폭 강화했지만 전체적인 틀과 대통령 권한 목록은 유사했다. 따라서 1987년 헌법 개정에서 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하고 ‘도로 3공화국’으로 회귀한 것은 큰 실책이다.
6공화국 헌법인 ‘87년 헌법’에도 그대로 남은 대통령의 ‘독재적 권한’은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리며 여러 번, 주로 현직 대통령의 몰락과 불행을 계기로 변화의 시험대에 올랐지만 바뀌지 않았다. 단 ‘한명’의 자살골로 나라가 휘청 거리는 이유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막강한 대통령 권한을 들고 2024년 12월 3일을 맞았다.
1963년 제3공화국 헌법과 현행 1987년 헌법에서 대통령과 국무회의와 관련한 조항을 비교해보면, 이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위의 표를 살펴보면, 조항이 거의 비슷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유사함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민주화를 유신 이전으로의 복귀로 사고했고,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권한과 관련하여 숙고하며 논의하지 못했다는 증언 혹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물론 이번 사태가 현행 헌법상 대통령‘제도의 결함’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 불통과 독선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적 결함’, 개인적 결함을 걸러 내거나 해결하지 못한 정치 ‘시스템의 결함’, 대통령의 비대한 권한과 장기화한 여소야대 국회의 조합 즉 악성 ‘분점정부의 장기화’가 대표적인 요소다. 특히 행정부와 의회의 일체의 협치 거부와 강대강 대치는 언제든지 큰 불이 날 수 있는 인화물질이었다. 민주당이 정치 규범을 무시하고 법사위 독차지나 줄줄이 탄핵안으로 헌법이 정한 틀 내에서 기름을 부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헌법적 틀 자체를 통째로 활활 불태웠다.
“이게 나라냐”에서 “어떤 나라냐”로
“이게 나라냐?” 2016년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외쳤다. 8년 뒤 2024년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또 외쳤다. “이게 나라냐?” 그리고 한 번 더 물었다. “나라 망했나?”
“어떤 나라냐” 2025년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묻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독한 추위에도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결국 ‘더 나은 사회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껏 미뤄온 ‘대통령 권한 축소’는 답을 찾아가는 적절한 시작점이다.
“이게 나라냐?” 2016년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외쳤다. 8년 뒤 2024년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또 외쳤다. “이게 나라냐?” 그리고 한 번 더 물었다. “나라 망했나?” 2시간 만에 국회에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되고,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체포가 집행되면서 “아직 안 망했구나”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러나 2024년 말 2025년 초, 한국 사람들은 ‘언제든지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깨달았다. ‘나중에 언젠가’ 하자던 헌법상 대통령 권한 축소의 타이밍을 자꾸 놓치는 동안 수업료는 계속 빠져나가는 셈이다. 이제 대통령 ‘한 명’이 자살골을 넣는다고 해서 ‘나라가 휘청’거리지 않는 미래를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
“어떤 나라냐” 2025년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묻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독한 추위에도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결국 ‘더 나은 사회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지나며 사회운동이 물어야 하는 것도 “어떤 나라냐” 즉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냐”는 질문이다. 지금껏 미뤄온 ‘대통령 권한 축소’는 답을 찾아가는 적절한 시작점이다.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한국일보·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신년여론조사 결과, 1,000명 응답자 중 51%는 '대통령 권한 축소'에 찬성했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