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0일, 광주 대안공간 공공연 마치홀에서 ‘한반도 반핵평화 운동의 미래 –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와 대남전략 변화에 부쳐’라는 주제로 대중 강연이 열렸다. 이 강연은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을 초청해, 현재의 한반도 핵 위기 상황과 이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강연에서는 점차 심화되는 북한의 핵 위협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조성된 위기를 조망했다. 임 실장은 북한의 핵 개발이 더 이상 단순한 협상 수단을 넘어서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닌 전략적이고 의도적인 행위임을 강조했다.
또한, 강연자는 전 세계 반핵 운동의 역사를 제시하며, 사회운동이 북한 핵을 예외로 두지 않는 일관된 반핵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원칙을 견지할 때만이 북한 핵을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한국 시민들을 설득하고,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에 맞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핵을 용인하지 않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을 거부함으로써 한반도에서부터 핵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북한 핵무기 개발, 어디까지 왔나
임필수 정책실장은 강연의 서두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설명하며, 2006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핵 실험이 2016년 수소탄 실험으로 본격적인 진전을 이루었다고 밝혔다. 이후 2017년까지 진행된 6차 핵실험에서 북한은 그 위력을 점차 키워왔으며, 특히 50~200킬로톤 규모의 파괴력을 가진 핵실험을 통해 남한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임필수 실장은 이를 "북한의 전략이 단순히 대미 협상용 무기에서 벗어나, 남한을 직접 겨냥한 전술적 전략으로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무기 체계 중 하나로 언급된 것은 2022년 열병식에서 공개된 ‘화성 11’ 신형 전술 유도무기다. 이 무기는 100km 이상의 사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동식 발사대를 통해 탐지가 어렵고,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강연자는 "이동식 발사체는 남한의 주요 도심을 타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협이며, 북한이 이러한 전략을 통해 남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는 핵전쟁으로부터 안전해졌는가?
강연자는 핵 과학자 회보가 매년 발표하는 상징적인 ‘최후의 날 시계’의 변천사를 소개하며, 인류가 핵무기 개발 이후 한순간도 핵위협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강조했다. 특히,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 시계의 초침을 자정 가까이로 앞당긴 주요 원인임을 언급하며, 현재도 핵무기가 인류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고, 한반도 핵위기 또한 현실적인 문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최후의 날 시계’는 1947년 처음 설정되었을 때 자정까지 7분을 남겨두고 시작됐다. 하지만 1949년 소련이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시계는 3분 전으로 이동했고, 1952년 미국, 1953년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해 2분 전까지 다가갔다. 그 후 1960년 UN군축회의 개시로 시계는 7분 전으로 되돌아갔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극복으로도 다시 7분 전을 유지했다. 1963년에는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 Partial Nuclear Test Ban Treaty)과 전략무기감축조약I(START I,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이 체결되면서 12분 전으로 한층 더 멀어졌으나, 1968년 프랑스와 중국의 핵 개발로 인해 7분 전으로 다시 가까워졌다.
1970년대 들어서도 변화는 계속되었다. 1969년 핵확산금지조약(NPT,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이 체결되며 시계는 10분 전으로 멀어졌고, 1972년 미국과 소련의 전략무기제한협정 체결로 12분 전으로 더 멀어졌지만, 1974년 인도가 핵을 보유하면서 9분 전으로 다시 가까워졌다. 1980년대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시계는 1981년 레이건 행정부의 핵태세 강화로 4분 전으로, 1984년 냉전 심화로 인해 3분 전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1988년,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핵무기 반대 운동과 중거리핵전력(INF)폐기조약 체결로 인해 시계는 6분 전으로 돌아갔고, 1990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유럽의 민주화로 10분 전으로 멀어졌다. 1991년 미·소 간 전략핵무기감축협정 체결로 시계는 역대 최장인 17분 전으로 설정되며 낙관적인 시기를 맞았다. 그러나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으로 다시 9분 전으로 다가갔고, 2007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5분 전으로 가까워졌다.
2023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안보에 큰 위협을 더하며, 시계는 90초 전으로 당겨졌다. ‘최후의 날 시계’를 자정에 가장 가깝게 앞당긴 두 주요 사건은 바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세계의 반핵평화운동 흐름
임필수 실장은 세계 반핵 평화 운동이 어떻게 핵무기 개발을 억제해왔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그 역사적 흐름을 짚어 나갔다. 그는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촉발된 핵위협이 부분핵실험금지조약같은 여러 조약을 통해 완화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국제적 조약들은 세계 반핵 평화 운동의 성과였다. 반핵 운동이 없었다면 이 같은 협정들이 체결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사회운동의 역할을 강조했다.
강연자는 특히 핵무기 개발에 기여한 과학자들이 이후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고 확산을 저지하려 나선 역설적인 역사를 소개했다. 그는 "핵무기를 탄생시킨 과학자들이 곧바로 그 위험을 경고하며 반핵 운동을 이끈 것이야말로 놀라운 역설"이라고 말했다. 이 과학자들의 활동은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퍼그워시회의, 그리고 핵과학자회보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기여했고, 미소 양국의 핵 관련 주요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연에서 소개된 또 다른 중요한 사례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후 일어난 일본의 대규모 반핵 대중운동이었다. 특히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해 일본 어선이 피폭된 사건은 일본 내 반핵운동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임 실장은 또한 유럽에서의 핵군축운동, 특히 ‘올더마스톤 행진’으로 상징되는 핵군축캠페인(CND, 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을 언급하며, 이러한 대중운동들이 1963년 부분핵실험금지조약과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체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했다.
1958년 부활절 주말, 영국 런던에 약 10,000여 명의 사람들이 핵무기 반대를 외치며 모였다. 이들은 영국 정부에 핵무기 개발과 실험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일방적인 군축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4일 동안 84km를 행진해, 영국의 핵무기 연구소인 올더마스톤까지 도착하는 대규모 평화 시위를 벌였다. 이 역사적인 행진은 '올더마스톤 행진'으로 불리며, 영국과 세계 평화운동의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그는 이어서 1980년대 데탕트가 흔들리며 미국과 소련 간의 긴장이 재점화되자, 유럽과 미국에서 대규모 반핵 시위가 다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 이 시위들은 1988년 중거리핵전력 폐기조약이라는 중요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강연자는 "역사적인 반핵 대중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핵무기 감축을 위한 국제적 약속도 가능했다. 이는 강대국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압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의 핵 위협인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으로도 이와 같은 반핵 평화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오늘날의 핵위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과거의 반핵 평화운동에 상응하는 대중적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며,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국제 연대와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에게 핵무기는 불가피한 선택인가?
임필수 실장은 강연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결정임을 강조하며, 북한의 핵무기를 옹호하거나 변호하는 일부 사회운동 집단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가 단순히 외교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남아공과 북한의 사례를 비교했다. 남아공은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완전히 조립되어 배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폐기했으며, 이는 북한과 분명한 차이점이다. “만약 북한의 핵 개발이 단순한 협상용이었다면, 굳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마치고 고강도 제재를 감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란의 사례 역시 북한과 다르다. 이란은 핵무기용으로 사용 가능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갖고 있지만, 완전히 개발하여 배치하지는 않았다.”
남아공의 핵탄두 관련 장치(왼쪽)와 케이스(오른쪽) 남아공의 핵무기는 완전히 조립되어 배치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임 실장은 또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이유로 자주 제기되는 남한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현실적이지 않은 핑계라고 일축했다. 그는 "현재 남한과 미국의 군사력이 북한에게 핵무기 개발을 불가피하게 할 정도로 위협적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1991년 남북한의 UN 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등 역대 정권의 대북 정책을 짚어보며, 한국은 집권 정당의 성향을 막론하고 일관되게 남북 평화공존 체제를 추구해왔다고 설명했다. 즉, 한국과 미국이 북한이 핵개발을 불가피하게 선택할 만한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동원(노태우정부: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통일원 차관 / 김대중정부: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개발에 몰두해 온 이유에 대해 임 실장은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하며, 북한의 핵무기는 내부 사건에 대한 외부 개입을 차단하려는 수단, 권력 승계 과정에서 정권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 혹은 전술핵을 활용해 한국에 공물이나 양보를 요구하려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핵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를 군사적 위협 외의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군사적 불가피성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의 결과임을 명확히 했다.
사회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2024년 3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992명 중 280명으로, 과반에 217명 부족 “한반도 비핵화 견지” 수정동의안이 부결되었다.
임필수 실장은 2024년 3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한반도 비핵화 견지” 수정 동의안이 부결된 사례를 언급하며, 이를 현재 사회운동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위험한 신호로 평가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는 과거에는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었다. 핵 없는 한반도를 통해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처럼 명확한 지향점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운동 사회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이번 수정동의안 부결이 외부에서 보기에 남한의 자체 핵무장 지지로 해석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반대하는 입장은 남한의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북한의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것은 대중의 인식과 지나치게 괴리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민주노총이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강연에서는 또한 과거와 달라진 안보 환경을 설명하며, 한국 내에서 ‘핵무기와 같은 북한의 위협’을 최우선 안보 위협으로 여기는 여론이 크게 증가한 점을 지적했다. 임 실장은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게 나타난 사례를 소개하며, 사회운동이 북한 핵문제에 대해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안보위협 (2022년 11월 여론조사/아산정책연구원)
그는 북한 핵을 예외로 두면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흔드는 것은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북한 핵을 예외로 두지 않는 일관된 반핵운동을 사회운동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운동의 오랜 원칙이다. 한반도의 핵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는 지금, 사회운동은 더욱 원칙적인 반핵 입장에서 북한 핵을 용인하지 않는 반핵 평화운동을 펼쳐야만 한다. 그래야만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운동이 전진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1991년 8월,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남북불가침선언을 위한 범민족 서명운동' 발족식을 마치고 각종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아래는 질의 응답 전문이다.
질의 응답 전문
북한의 핵무장 고도화에 따라 한국에서도 자체 핵무장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북핵에 대한 대항책으로서 자체 핵무장을 바라볼 뿐, 실제로 한국이 핵무장을 선택했을 때 발생할 구체적인 국내외 변화에 대해 충분히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선, 한국의 핵무장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의해 큰 제약을 받는다. 한국은 핵발전소에서 사용하는 모든 핵원료를 미국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사용후연료 재처리 역시 금지되어 있다. 일본은 미일 협정에 의해 재처리가 가능하지만, 한국은 이를 시도할 경우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된다. 독자적인 농축과 재처리에 대한 시도가 제재로 이어질 경우, 미국은 핵원료 공급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한국은 40%에 달하는 전력 수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제재가 강화되면 외부 국가들과의 교역이 막히고, 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북한이 경험한 수준의 국제제재는 한국 경제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길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같은 경우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제기되지만, 이는 희망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미국은 핵우산 제공에 대한 부담이 있지만, 한국의 핵무장은 핵확산금지조약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NPT는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제재하는 핵심 명분 중 하나였기 때문에, 한국이 이를 위반할 경우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큰 비판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선택할 경우 국내 에너지 공급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국제적인 고립과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더 대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또한, 다른 운동 진영, 사회, 정당, 제도권, 정부에 대해 사회운동이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할지 궁금하다.
일부 386세대는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북한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미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실패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트럼프가 당선된다고 해서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외교 정책에서 큰 틀의 컨센서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를 완전히 깨부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남한의 정치와 외교에 미칠 영향은 별도의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말을 자주 바꾸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공화당의 기본 정책을 고려할 때, 트럼프는 전 정부보다 더 보호무역주의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저금리 정책을 통해 저달러 기조를 유지하며 국내 경기 활성화를 목표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인플레이션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 방위비 분담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구체적인 정책보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가 자국의 이해관계에만 치중하면서 국제 협력에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을 가능성이다.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게 만들고, 이는 국제 협력이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 전쟁 등 글로벌 이슈들이 더욱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저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한반도 비핵화 견지’안건이 부결된 것을 보면 민주노총 대의원들 사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식 변화를 위해 어떤 활동이 필요할까?
민주노총 대의원들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낮은 지지를 해결하려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인식 개선 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우선 조합원들이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교육 자료를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소책자나 팜플렛, 그리고 영상자료 등을 활용해 비핵화의 중요성과 북한 핵문제의 국제적 함의를 설명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많은 조합원들이 북한 핵무기 문제에 대해 국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북한 핵 옹호가 가져오는 위험과 국제적 파급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교육과 선전 활동을 통해 비핵화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의 국제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면서도 사실상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상황이다. 완전한 비핵화는 이미 역전 불가능한 단계에 온 것 아닌가? 트럼프 행정부가 시도했던 '핵개발 영구 포기 대 제재 완화'라는 빅딜도 실패했는데, 무력 외에는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거나 중단시킬 방법이 없고, 현실적으로 '핵 동결'이 그나마 가능한 타협안 아닌가?
만약 북한의 핵 동결이 현실적인 타협안이었다면, 하노이 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이 원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타협이었지만, 하노이 회담에서 그 방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제 사회, 특히 미국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제재 완화를 제공하는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이 원칙을 유지했다.
'전략적 인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이는 무력을 이용한 정권 교체는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북한의 핵을 허용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부터 트럼프 행정부까지 이 기조는 변하지 않았으며,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인 정책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도 한미 군사 훈련을 중단하는 조건 하에 북한의 핵 개발 중단을 시도했지만, 결국 북한이 그 합의를 깬 것이다.
90년대 초반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던 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도 남한과 미국의 비핵화 스탠스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없다. 오히려 핵을 포기함으로써 얻는 것이 훨씬 많다. 반면, 북한의 핵을 용인할 경우, 국제적으로 잃는 것이 더 많다. 이는 핵 확산을 방지하는 다양한 조약과 국제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핵 문제는 여전히 비핵화가 목표이며, '핵 동결'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